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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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2. 06. 19. 주일설교2022-06-19 14: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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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3:1-5>   

[1] 사람들이 다윗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 마당을 탈취하더이다 하니
[2]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3]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한지라
[4]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5]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쳐서 죽이고 그들의 가축을 끌어 오니라 다윗이 이와 같이 그일라 주민을 구원하니라 



 




주님만이 왕이십니다 (12)

 

"그일라를 구원하라!"


-사무엘상 23:1~5-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할 뿐 아니라 사명도 깨닫게 됩니다. 이사야는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거룩한 부담을 느끼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했습니다.(사6:8)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에 거룩한 부담을 느끼는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래서 사명은 거룩한 부담입니다. 또한 사명은 눈물이기도 합니다. 페르시야 제국의 술 맡은 관원이었던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성문이 불탔다는 말을 듣고 큰 슬픔에 잠겨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결국 그의 눈물은 사명이 되어 예루살렘 성을 회복하는 일에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명은 눈물이고 거룩한 부담입니다. 그러므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명을 회복하려면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눈물과 거룩한 부담을 먼저 가져야 합니다. 


   오늘 분문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왕이었지만 왕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사울과 아직 왕이 아님에도 왕의 사명을 감당한 다윗을 보게 됩니다. 그일라 성읍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공격받아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백성들을 보호하고 구해야 할 사명이 왕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 왕이었던 사울은 그일라 백성들이 고통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도 외면했습니다. 오히려 사울 왕에게 쫓겨 광야에서 불안한 삶을 살았던 다윗이 그일라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반응했습니다. 다윗은 아직 왕이 되지 못하고 사울에게 쫓기는 형편이지만,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사람으로서 거룩한 부담을 가지고 “내가 가서 블레셋 사람을 치리이까?”(2)라며 하나님의 뜻을 물은 것입니다. 누가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처럼 보입니까? 왕좌에 앉아 있으면서도 사명을 망각한 사울입니까? 아니면 머리 둘 곳 없어 떠돌아다녀야 하는 신세이지만, 고통 받는 백성을 위해 근심하며 잠을 뒤척이다 기도의 자리로 나간 다윗입니까?


  교회에서 사명이 나온 것이 아니라 사명에서 교회가 나왔습니다.(앨런 허쉬) 교회는 부름 받은 자들의 모임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교회의 지체인 우리 각자도 사명에서부터 나왔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모두 제자요 사명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가정과 일터에서도 사명자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거룩하게 구별된 삶으로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닌 것을 보여주고 세상 사람을 구원하도록 부름 받았음을 가르쳐주셨습니다.(요17:16~20) 우리의 정체성이 세상의 성공이나 돈이나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인 것에 있음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다윗은 그일라의 백성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고통 받는 것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일라를 구원하러 가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사울 왕에게 위치가 발각될 위험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다윗이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2)라고 하나님께 물을 수 있었던 것은 다윗에게는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벧전2:9) 이것을 정체성으로 여기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사람입니다.(빌1:8) 그리스도의 심장(σπλάγχνον)을 가진 사람만이 그리스도의 심정(心情)을 압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아파하는 것을 아파하고, 하나님의 시선이 머문 곳에 나의 시선이 머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명은 거룩한 부담이고 눈물이며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으로 고통 받는 그일라를 구원할 마음을 품게 되었고, 그 마음이 거룩한 부담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물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그일라를 구원하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다윗을 따르려고 모여든 사람들이 반대했습니다.(3) 유다 땅에 있는 것조차 두려운데 어떻게 그일라를 구원하고자 블레셋 사람들과 싸울 수 있겠느냐고 말한 것입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틀린 말이 아니라고 하나님 보시기에 모두 옳은 선택은 아닙니다. 만일 선택해야 하는 일이 하나님이 부르신 사명의 일이라면 그 부르심에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지를 묻고 감당할 힘을 달라고 구하는 것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부하들이 반대하자 하나님의 뜻을 다시 확인했습니다.(5) 그리고 다윗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갔을 때 블레셋을 무찌르고 그일라를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다윗의 부하들이 두려워한 것처럼 사울 왕의 공격을 받을 위험에 처하고, 다윗이 구원한 그일라 주민들에게 배신당할 뻔한 일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위험을 미리 피할 수 있었고, 돌아올 때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은 가축(5)과 다윗을 따르는 무리가 600 여명으로 늘어나는 놀라운 은혜를 입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십니다.(롬8:28) 세상을 구원하는 사명에는 지체하지 않는 성천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시다.